이야기2015. 8. 1. 22:58

나는 주로 일기에서 소설 이런 글을 쓸 것 같아. .. ... 내가 쓰는 글이 주로 그런 거라서 그런 걸 올릴게. 직접적인 감정이나 생활에서 오는 그런 것들, 그리고 아예 소설의 조각들. 이런 것들.

카테고리는 알아서 (ㅋㅋ) 필명으로 바꿔... 몰라서 걍 썼어 ^----^


블로그 이름이나 포맷도 천천히 생각해보자...


일단 써두면 또 올라올 것이라고 믿어!!!

그럼 20000....

Posted by 언젠가의 난희
꿈람2015. 8. 1. 22:51




우울 내려다보기


우울이 턱까지 차 올라서 숨을 쉬기가 힘들 때가 많다. 목을 쥐고 바닥에 엎드리게 만든다. 거의 병적인 우울이다. ‘병적’이라는 선을 긋는 것은 내가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인데, 특히 요즘은 우울이 자꾸만 튀어나오는 바람에 일상이 툭툭 끊어져버린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뚜렷한 이유는 보이지 않고, 오직 허상들이 일렁이며 내 우울을 지피고 있다.


허상이라 함은, 일상에서 누군가가 흘리고 간 찌꺼기 같은 말들, 눈빛들, 행동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과거에서 몰아 닥친 생각이 남아 현재 괴롭히는 일도 있다. 이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며 나를 뼈로부터 피부를 깎아내는 데에서 생기는 고통이다. 머리는 이것들이 무의미한 과거의 조각임을 알고 있음에도, 고통은 버릇처럼 몸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예전에는 우울에 빠져있는 것을 즐길 때도 있었다. 그때는 우울이 생존을 위협하지 않을 시절이었다. 우울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내가 경계를 넘도록 만들어주었다. 오히려 생성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내가 숨쉬는 에너지가 우울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우울한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무언가를 남겨야 했으며, 소리를 질러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을 휘저으며 뛰어다녀야 했다.


지금은 이와 반대가 되어버렸다. 우울한 나는 쉽게 지친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손에서는 힘이 빠진다. 그렇게 서서히 굳어버리는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끝내고 쉬고 싶어한다.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던 개처럼, 우울 속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면 그렇게 눈을 감아버리기를 소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의 나는 정적에 휩싸인 시간 속에서 고통과 홀로 남게 된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를 여지도 없으며, 눈을 뜰 필요도 없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전의 우울을 초대했던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만을 기대하게 되었다. 알고 있기는 하다. 나는 그 몸을 지나쳐 자랐고, 오랜 껍데기로 애써 들어가는 것은 의미 없는 고통만을 피부에 남길 것임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그것임을 믿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미래는 도래하는 것인 동시에 오지 않으며, 과거 또한 이미 떨어졌다. 레비나스의 책을 쥐고 현재를 느꼈다. 지속되는 시간 위에서 흐르는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을 껴안으며 이 추운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일지도 모르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절망보다 희망이 먼저 다가온다. 인과에 얽매여 내 발에 채이는 미래에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 희망이다. 그러나 동시에 운명 같은 절망이 엄습한다. 이것이 우울인가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고, 우울한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날 붙잡으며 울먹인다. 제발, 과거를 버려달라고. 현재를 걸어달라고. 나는 나의 희미하고 나약한 손끝에서 다시 우울을 즙처럼 흘려내고 무너진다. 어제와 같은 우울이 또 생겨난 오늘 속에서 나는 다른 결말을 찾지만, 결국 돌아보면 모두 같다.


모든 것이 간단하던 때가 있었고, 오히려 내 속이 가장 복잡했다. 나는 홀로 친 막 속에서 자유를 만끽했을지도 모른다. 홀로 소리치고 날뛰던 그 공간이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쥔 실은 내 안에서 끝나지 않고, 꼭 밖으로 이어지거나, 밖에서 우겨 넣어진다. 아무도 내게 얹지 않은 짐을 애써 올리고 무거운 발을 뗀다.
다만 이것은 곧은 다리 위에 있는 짐이며, 끝없이 무너지는 것은 다른 쪽에서는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임을 안다. 나는 분명 무한히 망가지며 무한히 생성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가진 과거를 껴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내가 더 아프고, 더 아픈 만큼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픔은 새로 생길 것이다. 과거의 아픔은 현재의 내 것이 아니다. 고인 우울은 썩어버린다. 그러니 도래할 아픔을 위해 말라붙은 아픔은 떼어내자. 과거가 현재로 나타나는 순간이 너무 많다. 다시 살아나는 과거의 체험에 나는 너무나도 지쳐버렸다. 어쩌면 지친 우울에 눌리게 된 이유가 이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현재를 느끼기보다는 너무 많은 과거로 시간을 부수고 있는 것. 이것을 끊어내야 진정 홀로서기를 깨달을 수 있다. 어차피 이해될 수 없는 모든 것을 굳이 다시 토해내고 다시 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 오래된 음식을 소화하는 것을 그만두자. 새로운 음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말들에 새로운 그림을 주자. 이것을 하기에도 인생은 충분히 짧다. 날 선 감각으로 내 과거를 할퀴는 것은 이제 그만두자. 마음은 충분히 무겁다. 사랑하는 사람을 담기에도 작은 마음이다. 현재가 영영 사라지기 전에 과거를 버려야 한다. 맑은 우울을 길어 올리자.

Posted by 언젠가의 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