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하늘2015. 8. 2. 00:26

현재로 오는 과거와 이미 현재인 과거가 있다. 기억은 회상을 통해 지금의 의식으로 침투한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 듣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 주위와 단절된 방에 들어간 것처럼 과거의 장면들을 본다. 시간은 흘러간다. 하지만 그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장면들은 과거의 기억들로 대체된다. 이미 현재인 과거란, 현재에 색을 칠하는 기억들이다. 내가 그것들을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것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내가 지금 보고 듣고 있는 장면들에 과거의 조각들을 덧씌운다. 그렇게 현재에 침투하는 과거들이 있기에 현재는 온전히 현재일 수 없다. 현재의 장면은 불성실한 화가가 중간에 그만둔 작업물과 같이 군데군데 불규칙하게 색깔이 칠해져 있는 캔버스가 된다. 나는 달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달은 내가 과거에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보았던 달이기에 지금도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만약 내가 저 달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면, 지금의 달은 어제의 달과, 또 내일의 달과 내겐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가 현재에 침투한다. 그것은 과거가 칠해놓은 장면의 부분들이 아닌, 현재인 채로 남겨진 대부분의 장면이 나를 통과해 지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도서관의 서가를 아무리 헤매어도 나는 내가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가 과거에 보았던 것, 알고 있던 것, 또 그것과 관련되어 내가 알게 된 것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점으로 된 지도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과거가 현재를 압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연한 마주침을 경험한다. 지난 날 아무리 많이 스쳐 지나갔어도 그곳에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것이 어느 날은 불현듯 내 시야에 들어온다. 그것은 아마 내가 현재에 대해 얼마나 열려있는가, 혹은 닫혀있는가의 차이일 것이다. 내가 현재에 대해 닫혀있다면 나는 온전히 현재를 산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현재를 살고 싶은데도 나의 존재가 내 의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수가 있다. 자꾸 내 현재에 침투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기억일까, 나쁜 기억일까? 경험적으로 그것들은 내 현재의 기쁨을 망치려고 언제나 때를 노리며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나쁜 기억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불쾌한 기억들이 아니다. 잊히지 않은 기억, 잊힐 수 없던 기억들이다. 그것들은 그것이 생겨난 과거의 모습 그대로 끊임없이 현재에 개입한다. 예컨대 특정 알레르기를 앓거나 기타 불가피한 신체적 증상을 겪는 탓이 아니면서 어떤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가 그 음식을 피할 때마다 이야기하는 것은 매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 그의 머릿속에 박혀 들어간 기억의 조각이 때를 만나면 놓치지 않고 현재에 개입하여 그의 행동을 막는다. 우리는 세상에 미련을 갖고 죽은 사람이 죽어서도 세상을 떠돈다고 말한다. 아마 기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시간 속에 빛 바랜 채로 남아 있어야 할 기억들이 무엇 때문에 자꾸만 현현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과거 역시 그렇다. 해결되지 못한 기억들. 하지만 시간을 껍질처럼 뒤집어쓴 못된 기억이 본래 어떤 모습이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괴로운 현재에 비추어 끊임없이 그 기억들을 추적한다. 달리 말해, 해석한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를. 괜찮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함께 가자, 하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영원한 고독 속에 남겨진 그 순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그러나 과거는 밝혀지지 않고 해석된다. 나에게 자신의 과거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내 안으로 눈을 돌릴수록, 눈을 돌리게 될수록 나는 현재에 눈 감는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조금 더 천천히, 조금씩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과거가 계속 재발견되는 것이라면, 힘들 때에는 그것을 재발견하고 다시 재발견할 미래의 나를 기다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 현재와 과거, 모두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